책 이야기는 정말 오랜만에 적는듯 하다. 사실 그동안 책은 꾸준히 읽고 있었지만, 마음이 바빠 쉬이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무엇인가 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다.
이전에도 여러번 고민하고, 결론을 내린 주제이기도 했지만, 사람이란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나에게 닥친 일에는 어떠한 철학도 적용되지 않는다.
필립은 이전에 자기 나름으로 확립했던 철학을 생각하며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 철학은 그가 겪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기 떄문이다. 사상이 인생의 중대한 문제들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다.
그 자신 어떤 낯선, 그러면서도 자기 안에 자리잡은 어떤 힘에 좌지우지되어져 온 것 같았다.
...
그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사고하지만, 막상 행동의 순간이 닥치면 본능과 감정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무력해지고 말았다.
- 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당장에 살도 못빼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나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냐.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수행을 쌓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수행을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그 의미가 약간은 퇴색되었다 생각하고.
그 수행은 쉽게 이야기하면 고행길에 오르는 것.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 그리고 극복하는 것이려나. 뭐래나
그래서 그 수행이 도대체 이 책과 무슨 관련이 있냐하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이 궁금하지 않은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때로는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삶이 궁금해지기 따름이다. 이 책의 주인공 싯다르타 가 그랬다.
그는 굉장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의문이 들어, 수행의 길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미친 자식.
그렇게 수행의 길에 오른 싯다르타. 물론 그는 혼자는 아니었다. 말했지않은가. 인간이 수행을 쌓는 시절이었다.
여러명의 수행하는 사람들과 그는, 여러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고자 했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백이면 백 전부 그들에게 찾아온 시련들 속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 쉽지않지
모두에게 찾아왔다는 것은 한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싯다르타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는 것이지.
돈과 명예 그리고 색.
흔해빠진 이야기었다면, 훌륭하게 이겨내고 열반에 들었답니다 라고 끝났겠지.
하지만 흔해 빠진 이야기가 아니라 푹 빠진 이야기였다.
고기도 먹던 놈이 먹는다고, 싯다르타는 그러한 삶을 절제없이 즐겨버린다.
살도 찌고, 머리도 염색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옷가지도 입는다.
예전의 삶이 그리웠을 수 있다.
플렉스 .. 랄까.
하지만 부자의 삶도 버리고 온 사람다운지, 그 삶도 점차 정리를 하게되고, 다시 깨달음을 위한 길을 걷게된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후회의 연속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절친 아난다를 만나버리고 마는데...
자네가 순례하고 있다고?
아난다가 싯다르타를 보고 건낸 첫 마디이다.
아마 이런 말이 생략되어 있지 않을까?
- 너 따위가?
그도 그럴게 생각해봐라. 절친 싯다르타도 열심히 고행길을 올랐다고 생각해서, 자신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것만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이상한 사람이 머리는 노랗고 살은 쪄서 뒤뚱거리며,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있다면,
그리고 가까이 올수록..
- 어라? 얘 얼굴이 뭔가 익숙한데? 에이 아니겠지
하는데 상대방 입에서 나오는 말이
- 어이 아난다 왜 아는 척 안해?
.. 하겠냐고
그래서 아난다는 말한다.
그런 복장을 하고, 그런 신발을 신고, 그런 머리카락을 하고 순례하는 순례자는 거의 없어.
아예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 싯다르타 어디서 말재간만 늘어서 핑계아닌 핑계를 말한다.
비로소 그런 사람을 자네가 만난 것이네! 이보게 설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형상의 세계가 무상한 것, 덧없는 것이야.
얼씨구.. 이제까지 고기파티 하던 사람 입에서 잘도 나오는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열심히 비웃고 있지만, 수행을 하는 고빈다는 수행자답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싯다르타, 지금 자네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싯다르타를 만난 고빈다는 그의 답을 듣고 이 질문을 한다. 그대는 지금 어떤 사람이냐고.
참으로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나였으면 돌맹이로 ...
그는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마, 형상의 세계란 무상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싯다르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물어본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만 더 깊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나'는 '나'를 '나'로 인식하는 것이 존재한다. 어렵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아정체성을 어디서 얻느냐이다.
때로는 그것이 특별한 환경이 될 수 있고, 직업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녀 혹은 그를 사랑하는 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돈이 될 수 있고, 명예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을 잃었을 때, 스스로의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을 보게된다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럼 이제 슬슬 궁금해진다. 싯다르타는 어떻게 답했을까?
나도 모르겠네. 나도 자네만큼이나마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네. 나는 도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있어. 나는 한때는 부자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아. 그리고 내가 내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쉽게 생각하자.
내 안에서는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
부모 혹은 자식으로서의 나, 사회인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애인으로서의 나, 명예를 얻은 나, 돈이 많은 나
물론 하나의 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의 나를 잘 관찰한다면,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들 중 무엇이 나인가?
아니 잠깐,
그런데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정말 중요한 주제 는 맞는 것인가?
하하. 우습게도, 싯다르타는 형상의 세계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있지 않다.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자신 안에 영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 또한 쉽게 자신에게서 떠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내일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도를 향하여 가는 중에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흔들린다. 무너진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 삶속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린 여전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 아닐까? 설령 지금이 그런 모습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내일의 내가 어떠한 나일지는 내가 정할 수 없으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지는 여전히 나에게 존재한다.
그 불씨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이 어쩌면,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열반에 대한 고행의 길에서 얻은, 싯다르타만의 깨달음 아니었을까
도를 닦으란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 한번, 쉽게 정리해서 올리고 싶었던 글이다.
태어나길 생각이 많게 태어나, 머릿속에 떠도는 글들을 몇가지 정리해둔 것이 있다.
아무쪼록 잘 전달이 되었길 소망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몫은 아니다.
한가지 글을 더 읽고 이만 줄이자.
티타, 당신이 뭘 했든 나는 상관없어요. 본질적인 게 바뀌지 않았다면 살면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사람 사는 이야기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고 가벼운 우울 (3) | 2024.09.18 |
---|---|
04.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책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3) | 2023.08.08 |
03. 죽음과 함께 춤을 ( 책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2) | 2023.07.16 |
02. 인생에는 꼭 정해진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 책 : 인간의 굴레에서 ) (0) | 2023.07.02 |
0.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2)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