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어쩌면 우리 모두들 어느정도는 겪을 수 밖에 없는,
허무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낙관적 허무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
시간이 나게된다면, 한번 시청하도록 하자. 정말 좋아하는 유튜브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주제를 위해, 인간의 굴레에서 라는 책을 같이 살펴볼 예정이다.
참고로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책중 하나이다.
좋아하는 책이긴한데. 다른 사람에게 추천은 잘 안한다.
이 글도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뿐, 읽어보라 적극 권하고 싶진 않다.
( 내용에 작가의 좋지 않은 생각들도 담겨있다. )
거두절미하고, 본문으로 가자.
무언가,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하지 않은가?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허무란, 어쩌면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삶을 살아오는 대부분은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고.
기나긴 하루의 축제가 끝이나고, 모두가 정리하고 있는 늦은 밤이라든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며,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갈때 라든가.
꼭 삶 그 자체에서 무의미를 느낀다기보단, 드문드문 삶 속에서도 허무함은 찾아온다.
시작과 끝. 어떠한 시작은 반드시 끝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까? 의무도, 선도, 미도, 다 없애버리면,
우린 뭣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죠?
- 인간의 굴레에서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이 허무함을 극복한다고들 하는데..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몇가지 매체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꿈을 가져야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해요. 심리적으로 불건강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말들의 나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것은 반드시 정해진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 것 일까?
인간의 굴레에서 라는 책을 같이 살펴보며, 이야기를 마저 나누어 보자.
필립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어릴때의 우리들의 모습은 성악설을 절로 믿게해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가 겪게 되었을 상황은 쉬이 예상이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인가, 필립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약해질 때엔, 자신에게 얽혀있는 장애를 탓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지 않을까 한다.
극복하고 싶으면서도, 굴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아무튼, 그는
직업도 여러번 바꾸려하고, 사는 곳도 계속 바꾸려고한다.
필립은 교장의 사택을 걸어나왔다. 이제 학창생활은 끝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쩌면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에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장애에 대한 심리적 방어였을까.
그래서 '인간의 굴레' 는 뭔데?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이 굴레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인생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어쩌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틀이라 보아도 좋다.
직업, 외형, 가정, 성격.. 그것은 어쩌면 정의하기 따름일 수 있는 것들이겠지.
필립이 장애의 굴레에 갇혀, 어떠한 이유든 그곳에서 찾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모두, 제각각의 굴레 에 갇혀있다.
어떠한 굴레는 우리가 평생,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삶의 어느 시점으로 나에게 생기는 굴레도 있다.
마음의 상처가 굴레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연인이나 직업이 하나의 굴레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필립은, 이 굴레에 갖혀있는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 속에서 굴종하여 인정하고 사느니, 끝없이 벗어나는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한가?
직업이나 애인 때문에 내 선택이 제한 받고, 마음의 상처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막아서고
그런것들이 있냐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굴레의 연속이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필립은 자신의 친한 친구에게,
그래서 이 인생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는 자신의 벽에 걸려있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가르킨다.
이게 인생 이랜다.
농담하지마
필립도 이러한 의문을 그 순간 바로 해결하진 못한다.
근데 진짜 농담 아니지?
굴레에 굴종해버린 필립, 그리고 깨달음
그렇게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평소와 같이 살아가던 그는,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린 것이다.
어떠한 굴레도 박차고 나온 그 였지만, 역시 사람은 사랑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나보다.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었던 그는, 한 여인과 평생을 약속하게 되었고
어쩌면 굴종의 행복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겠지만
그 곳에서 벽에 걸려있는 페르시아 양탄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벽에 걸려있는 페르시아 양탄자.
페르시아 양탄자에는 수많은 패턴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패턴은 양탄자마다 제 각기 다르다,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지만, 어떠한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아니다.
심지어 그것은 양탄자임에도 벽에 걸려 있다.
각자가 나름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아가며, 고난을 겪고, 어렵사리 무언가를 달성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벽에 걸려 있는 양탄자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정해진 의미가 없다.
필립은 여러 굴레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자유를 쫓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오던 필립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벗어나야하는 것은 의미의 굴레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의 행동들 또한 하나의 굴레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인생에는 꼭 정해진 의미가 있지 않아도 괜찮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은 느꼈겠지만, 인생엔 큰 의미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의미의 굴레를 깨는 것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어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삶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된것이 아닐까?
의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도 정말 불행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형태를 가진 모든 것의 가치를 낮추고, 인생의 덧없음으로 결론을 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의미의 굴레를 벗어던짐으로서 우리가 얻게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그저 모든 것이 허무하게 스러질 것들이니, 그것에 대해 매일 비관하며 지내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삶에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이 말이다.
때로는 살아오지 않았던 환경에 나를 내던질 수 있고, 싫어했던 취미도 도전해볼 수 있으며
오히려 살아왔던 그대로 쭉이어가도 좋다.
자신만의 양탄자를 멋지게 만들며,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는 것이지.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싶은, 낙관적 허무주의 이다.
참고로 필립은..
그래도 필립 이야기인데, 그가 결론지은 생각도 한번 읽어보자.
지난날의 기나긴 여정을 되돌아보며 필립은 자신의 과거를기꺼이 받아들였다. 삶을 그처럼 힘들게 만들었던 불구도 받아들였다. 불구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졌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불구 때문에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도 아울러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다.
글이 길었다.
마지막으로 짧은 글을 읽고 마치자. 깊은 밤이다.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키티는 움찔했지만, 원장 수녀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 인생의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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