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내용소개부터 올릴까, 예전에 쓴 글을 하나씩 올려볼까 생각했다.
내가 아는 것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얼만큼의 정보를 전달해야할까. 이 주제는 고역스럽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을 요리하는 것과, 책 전체를 나누어보는 것은 정말 무게가 다른 일이다.
빙빙 돌았다. 쓴 글을 올려보겠다.
글의 이해대신 필자를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글로서는 초보자의 입장에 서있다.
시작하겠다.
악마는 이름을 갖고 현세에 내려온다. 그 이름엔 그의 욕망과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고, 그것을 아는 것은 그 악마가 이 세상에 내려온 진정한 목적을 아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이름을 알고난 후로는, 보통 인간 스스로의 몫만 남았있었다.
조르바는 대지에 닿아있는 인물이다. 여기서 대지에 닿아있다는 것은, 땅을 밟고 사는 사람 그 자체를 말하는 것도 되겠지만, 누구보다 인간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 보아도 되겠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은 오직 그 순간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자존심, 보여지는 모습, 사회적인 울타리. 그것들은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반면 무엇하나 머리속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이 책에서 조르바를 관찰하는 이도 그렇다.
두목이라 불리는 그는 책을 좋아하며, 머리속에선 언제나 형이상학적 내용이 떠돈다. 조르바는 그에게 말한다.
결정하지 못하는 무언가, 머리속에 떠도는 것들을 언어로서 정의하라고.
인간의 언어로 나타내는 것. 어쩌면 그것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한 것을 대지로 끌어내리는 행위였으며, 악마를 제령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때로, 초월자적인 삶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향하는 가치를 추구한다. 닿을 수 없는 장소를 마련하고, 그것을 쫓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삶도 꽤나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것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영역이므로.
하지만 그러한 삶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땅에 사는 동물이 하늘을 너무 오래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사람답게 살아야하는 부분을 인정해도 좋다. 나는 나의 인간적인 불완전한 부분을 그렇게 인정했다.
나에게 존재하는 미지의 공포 - 욕망을 반드시 이기고 넘어야할 산이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내가 나 자신에게 내는 목소리라 받아드린 것이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집중한다. 내가 이것을 진정으로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이름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으로는 세례를 베푼다고 되어있다.
이름을 알면 그렇게 커보이던 무언가가. 내 시야속으로 들어온다. 그래. 너는 자존심이구나. 너는 꼿꼿이 서있는 나의 마음이구나. 너가 나의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방해하고 있었구나. 내가 이젠 너를 벗어던지고, 그 순간을 제대로 즐겨보겠다.
제령의식이었다.
예전의 내가 생각난다.
이것저것 재느냐고 스스로 가능성을 닫아버린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꽤나 놓치던 사람이었다.
내 안의 욕망은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미지의 공포였으며, 악마이기도 했고, 넘어야할 산이기도 했다.
춤을 출 수 있는 곳에선, 춤을 추는 것도 좋다.
그 순간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고 가벼운 우울 (3) | 2024.09.18 |
---|---|
04.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책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3) | 2023.08.08 |
03. 죽음과 함께 춤을 ( 책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2) | 2023.07.16 |
02. 인생에는 꼭 정해진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 책 : 인간의 굴레에서 ) (0) | 2023.07.02 |
01.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책 : 싯다르타 ) (2) | 2023.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