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보여 줄 수 있어요? ]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리스인 조르바
어쩌면, 그냥 속편하게 사는게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관하여
오늘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죽음 이다.
죽음은 꽤나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좋지 않은 형태도 있지만, 태어난 생명체의 대부분은 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영원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결국 도착하는 세계는 영원이 없는 세계에 가깝다.
아마도, 우리들은 그렇게 모두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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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매 순간 죽음과 밀접촉하며, 항시 피부로 느끼는 기분은 그리 썩 좋을 것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항상 그것을 인지하고 있어야한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이 나의 세상 어딘가에 찾아오더라도, 몇달 뒤 쯤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도 하나의 큰 축복이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사실 내가 이 곳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나는 죽음의 향기를 짙게 맡고 있는 사람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필자가 생각하고 느낀, 아주 조그마한 무언가가 적혀있다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죽음과 함께 춤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죽음을 완벽하게 잊고 살아야한다거나 ( 어쩌면 지금처럼 )
그것을 매 순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글에서도 썼듯,
필자는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여력도 되지않고,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하는 지 또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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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뭐야?
뭐긴, 그냥 춤추는 법 이나 배우자 이거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오늘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 의 이야기와 함께 몇가지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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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가 죽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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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책은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 한다.
죽음으로 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죽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그의 죽음엔 슬픈 모양이 하나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마치 죽음이 자신과는 저 멀리에 있는, 절대 내게는 닿지 못할 무언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 그들 역시 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죽은 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야'
-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대해 듣고,
그 장난기 어린 시선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카드 놀이는 틀렸군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하더라도 섭섭해하지 마세요.
- 그의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은
오히려 재산을 누가 갖게 되었는지, 이후에 어떤 게임을 할지를 논의한다.
이것이 그의 죽음이었다.
그는 왜 그러한 최후를 맞이하였을까?
그래서 그가 악한 사람이었나 그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때로는 희생하기도 한. 한 가정의 아버지 였다.
이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부부의 목표도 같았으므로,두 사람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었다뿐이지 결혼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았다.
..
[ 이반 일리치는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지요 ]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놀라운 일은 아닐 수 있다.
우리의 내면의 깊은 곳을 살펴보면, 꽤나 비슷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 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아주 작은 상처에서 시작된 불행
이반 일리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판사로 일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한 가정을 이루기도 하며, 돈을 벌기위해 이리저리 살아가는,
마치 삶을 살아가는 모두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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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특정한 대상이나 관계에서 찾는 것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도 그의 삶을 때로는 직업적인 곳에 두었다가, 후에는 가정에 두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은, 그의 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온다.
이사를 위해 일을 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작은 상처가 난 것이다.
그에게 찾아온 죽음의 공포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매 순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의사이거나, 환자이거나
조그맣게 다쳤을 뿐인데, 자꾸만 의식이 그곳으로 몰린다.
마치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아. 가족에게도 이야기하고, 병원에도 방문한다.
하지만 그가 들을 수 있는 말은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이반 일리치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였다.
[ 내 상태가 위중한가 아닌가?]
하지만 의사는 엉뚱한 질문이라는 듯 무시해버렸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감기에 걸린 사람을 보며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프겠거니~ 하고 생각하지.
큰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죽을 것처럼 행동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이상해보인다.
이반 일리치가 마주해야했을 모습도 비슷하리라.
하지만 그는 그 상처를 통해 그동안 잊고지냈던 죽음을 느낀다.
점점 심해지는 그의 병세
하지만 좀처럼 상처는 낫지않고, 병세는 심해진다. 또한 그는 그의 아내가 답답하기도 하다.
자신은 이렇게 죽어가는데, 그녀는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그를 대하니 말이다.
이반 일리치는 확실히 느낀다.
자신은 죽음 을 향해 가고있구나.
( 사실 우리는 모두...)
[ 맹장이라 ! 신장이라 ! 이건 맹장이나 신장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리고 ..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은 여기에 있다가 서서히 떠나가고 있어. 그리고 난 그걸 막을 수 없는 거야.
그래,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봐야 뭐하겠어?
..
정말 내가 죽는 걸까? 아니, 난 죽고 싶지 않아! ]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고 비참했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끔찍한 공포를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죽음을 받아드리는 일은 쉽지 않다.
몇번씩이나 겪을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무뎌진다고들 하지만, 죽음은 그것과 꽤나 다른 일이다.
어찌되었건 단 한번이잖아.
사실 필자에게도 "그래서 당신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드렸습니까" 묻는다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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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의 가족들은 그를 염려하지만, 진정으로 염려하는듯 보이진 않다.
그의 아픔을 가벼운 무언가로 치부해버리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러한 일상속에서는 또다시 죽음이 제게서 떠나감을 느낀다.
마치 죽음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 인듯 말이다.
하지만 약을 먹을 때는 어김없이, 죽음이 그를 찾아온다.
죽음은 예전과 똑같이 그곳에 있었고, 통증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이제 더는 죽음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꽃 뒤편에서 똑똑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게 삶의 마지막이 자신을 점점 찾아오기 시작하자.
삶을 제대로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불행이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늘 올바르게 살았음을 떠올리며 이상한 생각들을 떨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그는 한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껏 살아왔고,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자신에게서 삶과 죽음을 가리는 거짓과 속임수 였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이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최후를 받아드린다.
거짓된 행동들로 ( 진실성 없는 )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끝난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렇게 그는 숨을 거둔다.
그럼 우리의 삶은?
죽음을 마주한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며.
자신이 쌓아올리고, 가치를 느끼던 무언가들이 사실은 삶과 죽음을 가리는 것들이었음 을 느낀다.
타인은 무섭도록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직장 동료는 그들의 승진을 염려하고, 가족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는 그렇게 차가운 죽음을 맞이했다.
( 문제라고 보긴 힘들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부정하며 살아가므로)
이상하다. 자신은 분명 그것들이 올바른 삶의 형태라고 여기며 열심히 쌓아올렸것만,
자신의 죽음 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거짓된 것이 되어버리고,
한번쯤 진정으로 생각해보아야할 죽음 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가리고 있었다니.
사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 세상에 남아있는 가치는 무엇하나 온전한 것이 없겠고,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어질 수 있겠지만,
필자가 느낀 바는 이렇다.
살아가며 자신에게 정말 필요하다 느끼는 것을,
한번쯤은 죽음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다 놓을 수 도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죽음을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 위에 서 있을 수 있게 해야한다.
그것들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가치가 커지는 것도 있으며, 가치가 바뀌는 것도 있다.
참고로 필자는,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상대가 필요함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았으며,
자신이 쌓아올린 것들은 진정한 죽음 앞에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고,
죽음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진정한 것들에 대해 생각 해볼 수 있음도 알게되니
그러한 행동 속에서 죽음이 더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음을 알게된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죽음과 함께 춤 을 추는 것이긴하다...
또한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했듯, 죽음 위에 무엇을 세워야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스스로 이건 어떨까 하는 것이지..
무책임 하다면 할말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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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굉장히 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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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길이는 익숙치 않아. 잘 와닿았는지, 읽기 쉬웠는지 큰 염려가 된다.
애써 전달하려고 하는 글이, 아무짝에 쓸모없어지면.. 조금 그렇잖아?
시간날때 조금씩 글을 수정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생각나는 글을 읽고 마치도록 하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덧없이 사라져 가는 것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서도 우리 역시 덧없이 스러져 갈 것이며 조만간 시들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술가로서 어떤 형상을 창조하거나 사상가로서 어떤 법칙을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할 때면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거대한 죽음의 무도로부터 구해 내려고 애쓴다. 우리 자신보다 더 오래 지속될 무엇인가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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